특히 상법개정 이슈에 대해 이 원장이 '직을 걸겠다'는 수위 높은 발언까지 내놓아 자본시장에 파장이 크게 이는 가운데 때 아닌 사의 표명은 금융감독기관장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일 이 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따른 거취와 관련된 질문에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어제 통화해 (사퇴) 입장을 말씀 드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직을 걸고 상법개정안 거부권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쳐온 이 원장이 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의 상법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A증권사 관계자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 결과를 앞두고 보인 행보가 아닐까 한다"며 "상법개정이 물론 자본시장과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일이기는 하나,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물러나겠다고 한 것은 기관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어 "오히려 끝까지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며 "이 원장이 12·3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관련 언급을 삼가다 보여준 모습이어서 (상법개정안 재의요구권 반대 취지에도) 더욱 공감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이달 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한다고 공표했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선고 이후) 대통령이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이런 걸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혼란한 상황"이라며 "금감원장 임면권자는 대통령이므로 가능하다면 대통령에게 (거취를) 말씀 드리는 게 제일 현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주주가치 보호나 자본시장 선진화는 대통령이 직접 추진한 중요 정책이고 대통령이 계셨으면 (상법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이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지만 거취와 관련한 최종 결정은 탄핵선고 이후로 미뤄진 셈이다. 이를 두고 임기가 2개월밖에 남지 않은 데다 시장에 산적한 현안 등을 이유로 나머지 임기를 모두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보여주기식 행동을 취한 것"이라는 날선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이 원장은 김 위원장에게 사의를 밝혔지만 최상목 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의 만류로 이달 3일 F4회의(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비롯한 각종 공식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등이 임박해 시장의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리를 지키겠다는 취지다.
B증권사 관계자는 "법리적 논리를 시장과 잘 조율하는 게 관(官)의 역할인데, 그동안 법리적인 잣대만 들이대면서 자본시장이 많이 위축됐고 활력도 많이 떨어졌다"며 "이처럼 취임 이후 줄곧 강행군을 이어오다 갑자기 상법개정 이슈로 사의를 표명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C증권사 관계자도 "국내 증시 디스카운트 해결 방안으로 상법개정에 관해 총대를 멘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자리가 자리이니 만큼 다른 F4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정제된 멘트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금융사들에 대한 감독 서비스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음에도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무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윤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금융시장 안정이 중요한 상황에서 거취 관련 언급이 너무 안일했다"고 덧붙였다.
D자산운용 관계자는 "이 원장이 사의를 표명했어도 직접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이 아닌 데다 확정된 것도 아니다"라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13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상법개정안은 전국 100만여개의 모든 법인을 대상으로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는 게 핵심 내용이다.
반면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2600여개 상장 법인에만 적용된다. 한 권한대행은 "상장회사 중심으로 일반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행이 정착되고 관련 판례도 축적돼가면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현실에 더욱 적합하다"고 강조하며 상법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