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대 ‘공학전환 분쟁’ 일단락…학교 측 안전대책 강화
파동 “동덕여대와도 연대…침묵하지 않을 것”
동덕여자대학교에서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광주여대에서 학내 갈등이 봉합됐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광주여대가 학교와 학생 간 분쟁을 해결하는 데 참고할 만한 좋은 선례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주여대 공학 전환 논란은 지난 5월 학교 측이 학칙 개정을 통해 외국인 전담 과정인 글로벌융합학부와 성인학습자과정인 미래융합학부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두 과정 모두 남성도 수강할 수 있게 했다. 학교 측은 학칙 개정과 관련해 설문조사·설명회·관련 위원회 검토 등을 거쳤으며, 학생회가 해당 절차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학생이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반발했다.
이후 광주여대 학생들은 두 차례에 걸쳐 과잠(학과점퍼) 연대·포스트잇 붙이기·근조화환 등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파동은 지난달 18일 본관 앞에서 공학 전환 및 동덕여대 연대 시위를 진행했으며, 같은 달 25일 열린 두 번째 시위에서도 남성 모집 관련 학칙 철회를 촉구했다. 두 번의 시위 끝에 시위팀 '파동'과 학생회는 처장단을 만나 공학 전환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한 학교 측은 안전 대책의 일환으로 화장실 불법 카메라 점검도 강화하기로 했다. 비록 이견차는 있었지만 학교와 학생 측은 재정난 등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호 이해하기로 합의했다.
학교 당국으로부터 공학 전환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기까지에는 시위팀 파동의 노력이 있었다. 세 명의 학부생으로 구성된 파동은 공학 전환 반대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여성주의팀 '화로'와 호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시민모임 '비호'도 파동에 자문과 연대를 아끼지 않았다.
교내 시위가 일단락되면서 이제 파동은 광주여대 유일한 '여성인권 동아리' 출범을 꿈꾸게 됐다. 파동은 최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2025년 교내 동아리 설립 요건을 충족시켜 파동을 '여성인권 동아리'로 전환, 관련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광주여성민우회도 광주여대 여성인권 동아리 설립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최주영(활동명) 파동 부대표는 "여성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을 영입해 2025년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며 "저희의 시작이 미미하고, 1~2년 내로 끝날 수도 있지만 시작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4년제 여대는 이화·숙명·성신·동덕·덕성·서울·광주여대 등 7곳이다. 한양여대를 비롯한 전문대를 더하면 여대는 모두 14곳이다. 광주여대는 비수도권 유일한 4년제 여대다. 최근 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다양한 담론을 촉발하면서 일각에서는 여대가 '안전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시 말해 여대의 존립을 위해서는 '안전한 공간'을 뛰어넘는 여대만의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동은 이 같은 지적에 공감한다면서도 "현시점에서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파동의 이철(활동명)은 "여대가 처음 설립됐을 때는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장소였다"며 "하지만 현재 한국의 여성혐오 범죄 실태를 고려할 때 여대의 존재는 교육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안전을 뛰어넘는 다른 부분에서 여대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죠. 결국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범죄 실태를 살펴보면 아직까지는 안전에 초점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이야기하면 사상과 스타일이 검열당할까봐 두렵다 합니다. 또 여성들은 귀갓길이 무섭다고들 말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안전과 성평등이 먼저 보장돼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철)
왜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것인지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언론과 사이버 레커가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여기에 정치인들까지 '비문명', '폭력 사태'를 운운하며 혐오에 편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동덕여대 총학생회장과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의 법률대리인인 이경하 변호사는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파동팀도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일침을 날렸다. 최 부대표는 "사회 전반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며 "성별과 수도권·비수도권 등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갈라치기의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여대 내 갈등은 봉합됐지만 다른 여대들의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학교 측을 상대로 점거농성을 벌인 지 23일 만에 해제했다. 비록 점거 농성은 끝났지만 동덕여대 학생들은 지난 11일 공학전환에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그리고 파동은 앞으로도 동덕여대를 비롯한 다른 여대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당연히 앞으로도 연대할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동덕여대는 저희가 사태를 원만하게 합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더욱 침묵할 수 없습니다. (연대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불이익도 많겠죠. 하지만 저희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최주영)
마지막으로 파동은 외부의 비난과 따가운 시선 그리고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조금씩 사그라지는 관심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여대들을 향해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치는 순간이 많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치더라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하는 데까지 끝까지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나중에 다 같이 모여 치킨집에서 맥주나 한잔하면서 회포라도 풀 수 있으니까요. 우리 구부러질지언정 꺾이지는 맙시다!" (최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