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법', 용어도 법안추진도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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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8.10.09. 오후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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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의 미디어창] '스타자살', 화제성 내용 쫓아다닌 공영방송

국민을 충격과 비통 속에 빠트린 탤런트 최진실씨의 자살사건 이후 일주일. 최씨의 죽음은 ‘단순 충동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한국사회에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대한 뜨거운 쟁점거리를 남겼다. 일부 언론에서 성급하게 만들어낸 ‘최진실법’이란 부적절한 용어를 한나라당에서 차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고인에게 ‘이중폭력행사’라는 반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미디어 오늘(10월8일자)에 따르면, 헤럴드 경제가 처음으로 ‘최진실법’이란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고 이를 한나라당에서 그대로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하지만 부적절했다. 공당에서 이를 인용하여 공개적으로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더욱 부적절하고 부당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최씨의 죽음이 과연 인터넷 악플이 직접적 원인이었는지 우울증이 더 직접적 원인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 중증이었다면 악플과의 상관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최진실법’이라는 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 성급해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한다.

설혹 악플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살은 정당화될 수 없고 이를 토대로 법안을 만든다는 것에 사회적 동의를 구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살해된 성폭행 희생자의 이름을 본따 만들려고 했던 법안조차 그 유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경험이 있다. 따라서 특정인의 이름을 본따 만드는 법안은 신중해야 한다. 고인의 뜻을 헤아려야 하고 유가족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 미디어도 정당도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최씨의 자살사건은 예상대로 이후 모방자살이 잇달았다. 미디어는 자살, 모방자살을 경쟁하듯 보여줬다. 공영방송이라는 KBS와 MBC는 당일 9시 뉴스에서 헤드라인으로 각각 총뉴스시간에 10분과 15분을 대폭 할애해서 대서특필했다. 애도와 동정, 추앙이 봇물을 이루었고 특집편까지 따로 만들어 보도했다. 대중스타에 대한 그만한 대접은 죽은자에 대한 예우라고하지만 다루는 방식과 내용이 문제였다. 공영방송인지 상업방송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흥분했다. ‘최고의 배우’ ‘최고의 스타’ 등 찬사가 쏟아졌다. 스타성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최씨의 인기를 시샘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방송이 보여주는 스타자살 사건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성찰보다는 사건에 초점을 맞춰 화제성 내용을 쫒아다녔다. 영안실에 대기하며 잇달아 찾아오는 유명연예인들의 눈물과 유가족들의 통곡을 여과없이 클로즈업하여 예사로 보여줬다. 무례한 카메라 촬영이었고 방송사 내 게이트키핑조차 생략된 공영방송의 저질화를 보는 듯 했다. 포토라인은 무시됐고 최씨의 친인척이면 누구든 붙잡고 말을 걸었고 그 말을 고스란히 방송에 내보냈다.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를 묻고 싶었다. BBC를 닮고 싶다는 KBS에게 이런 유명스타의 자살사건을 어떻게 보도하는지 공부라도 좀 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나라당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과도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빚는다. 현행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고 더구나 처벌한 전례도 많은데 굳이 ‘사이버 모욕죄’까지 신설할 이유는 없다. 대신에 인터넷 실명제를 더 강화하는 정도로도 얼마든지 입법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대책없는 민주당도 이에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악플러들이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해치고 인격살인에 직,간접적 원인이 되는 행태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

비겁한 익명의 악플러들을 걸러내고 사이버 공간의 질서를 잡아주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대중스타들에 대한 욕설과 비방 등 ‘얼굴없는 테러’에 대해서는 단속이 불가피하다. 한국인 특유의 속성, 앞에 나서서는 입도 제대로 벙긋 못하면서 얼굴만 가리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일부 몰지각한 악플러들에 대해 ‘인터넷 실명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물론 이 자체가 다소 부족해보일 수도 있으나 법은 최소한의 개입에 그쳐야 한다. 입법은 또 다른 법익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이 돼야하고 반드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고인의 이름을 ‘법안’이란 미명하에 정당이나 미디어에서 언급하는 자체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한 매우 부적절한 용어선택이다. 방송사마다 고인을 기리는 특집을 마련한다고 한다. 시청률을 의식한 상업주의를 경계하며 동시에 인간생명존중과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대중스타들에게도 꼭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스타는 대중의 인기를 먹고살지만 동시에 비난과 욕설도 때로는 감당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강화된 네트웍은 스토커들의 목소리까지 여과없이 스타에게 전달되는 열린 사회로 만들었다. 대중스타는 외모만큼이나 정신적 성숙을 요구받고 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유명세란 그런 것을 극복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너도 나도 불완전한 인간인데 어찌 완벽을 요구하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마는 대중스타는 삶도 죽음도 스타답기를 바라고 있다.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은 너무나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cykim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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