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비정상?" 아이들 마음 상처주는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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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9.14. 오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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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한부모·다문화·조손 가정 외면한 교과서…배우는 학생-가르치는 교사, 모두 고통]
한 단원 전체에 걸쳐 양부모 가족 위주의 화목한 가정 생활을 소개한 C출판사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사진=윤준호 기자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중학생 정민지양(13·가명)에게 풍성한 한가위는 꿈 같은 일이다. 6년 전 이혼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정양은 올해도 어김없이 쓸쓸한 추석을 앞두고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아버지는 연휴에도 공사판에 나가야 한다. 찾아오는 친척이라곤 없다. 평소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도 명절을 맞아 시골로 내려간다.

허전한 정양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또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 다름 아닌 교과서 속 가족 모습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바람직하고 화목한 가족으로 묘사한 도덕 교과서의 한 대목을 보다 눈물이 왈칵 났다.

정양은 "엄마, 아빠가 모두 있어야 행복한 가족이라 가르치는 교과서를 접했을 때 슬프고 속이 상해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픔은 더 커져만 간다"고 말했다.

교과서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나 국제화 등에 따라 가정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는데 여전히 교과서에는 '전통적' 양부모·동일 국적 부부 가족만 정상적 가정으로 묘사하고 있어서다.

고정관념에 뿌리를 둔 교과서는 배우는 아이들은 물론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도 고민을 안긴다. 교육 현장에서는 현실을 반영한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한부모 가족은 178만3000가구에 달한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5%로 열 집 가운데 한집 꼴이다.

아울러 다문화 가족은 전체 1.5%에 이르는 29만9200가구, 조부모와 손자녀가 함께 사는 조손 가족은 전체 0.5%인 11만3111가구로 나타났다. 한부모·다문화·조손 가족이 전체 가구의 약 11.5%를 구성하는 셈이다.

K출판사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서는 유독 양부모 가족 사진만 들어 행복한 가정을 묘사한다./ 사진=윤준호 기자
상황이 이렇지만 상당수 교과서는 이들 한부모·다문화·조손 가족을 정상과는 거리가 먼 특이 집단으로 묘사한다.

취재 결과 차별적인 내용은 교육부가 펴낸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보다 민간출판사가 발행하는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에서 두드러졌다.

K출판사가 만든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가족을 '부부 중심으로 그 부모나 자녀를 포함한 생활공동체'로 정의한다. 사진도 하나같이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양부모 가족 모습뿐이다.

가정의 소중함을 각자 생각해보라는 체험활동 과제에는 '엄마, 아빠, 동생이 있어 우리 집보다 좋은 곳이 없다'는 편지가 예시로 나온다.

총 15페이지에 달하는 한 단원 분량에서 한부모·다문화·조손 가족 등을 설명한 부분은 4줄짜리 한 단락이 전부다. 내용도 현대사회에 들어 등장한 다양한 가족 중 하나 정도로 요약했다.

다른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C출판사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2단원에는 'Special Family Weekends'(특별한 가족 주말)이란 제목으로 가족 이야기만 따로 다루고 있다.

해당 단원 본문에는 △부모가 주말마다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가족이 함께 전통무예 '태껸'을 배우는 모습 △야외 캠핑을 즐기는 모습 등 한 부모나 조손 가족 아이들이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한 부분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해당 교과서로 아이들을 지도한 서울 한 중학교 영어 교사 권모씨(26·여)는 "본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한부모 가족 학생이 고개를 숙인 채 훌쩍거리고 울었다"며 "달래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날 이후 한부모 가족 자녀가 있는 다른 교실 수업에서도 본문을 가르치는 내내 마음이 아파 혼났다"며 "해당 교과서 내용은 백번 이해하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직 교사들은 이밖에도 △Y출판사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2단원 'My Family Newspaper'(우리 가족 신문) △D출판사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3단원 'My family weekend'(우리 가족 주말) △J출판사 중학교 2학년 기술·가정 교과서 1단원 한부모·다문화 가족 상담과제 등을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상처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꼽았다.

아울러 "현재 상당수 교과서 내용이 변화하는 가족 형태나 개념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며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아프게 할 여지가 있는 내용은 가급적 수정해야 한다. 그게 커 나가는 아이들의 건전한 사회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부모·다문화 가족 등이 어려움을 당연히 겪고 있을 거라 간주한 J출판사 중학교 2학년 기술·가정 교과서./ 사진=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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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기자 hi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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