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실과 가식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고인이 된 최진실은 ‘진실’이 ‘가식’으로 불리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최진실이 모 잡지사 기자와 나눴다는 마지막 통화는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진솔해서 가슴을 더욱 세게 후려친다. 아프다. 우리가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아프다고 하면 “난 안그런데”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너무 떨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아.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엄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엄마가 낫지 않을까.”

인위적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최진실의 죽음이 이름처럼 진실을 향한 불꽃 같은 열정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면 망자 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실례일까. 죽으면서까지 아이들을 위해 진실을 지키려고 한 그 모습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식의 세계를 향해 청정수를 뿌리며 준엄하게 꾸짖는 것 같아 외경(畏敬)스럽다. 정작 우리들은 여전히 진실보다 가식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국민 혈세를 ‘벼룩의 간 빼먹듯’ 축내고 나몰라라 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놀부 심보, 그 비위를 알고도 애써 눈감아 주는 ‘그 밥의 그 나물’ 행정 당국의 공범(共犯) 소행, 파탄지경의 체감 서민경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엇박자 정책과 무책임 발언 등으로 화를 더 키워온 ‘오락가락’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시침뚝, 국민 골병은 안중에도 없이 정쟁(政爭)으로 일관하는 ‘늘 후진국형’ 정치권의 무책임, 국정감사장에서 흥분을 이기지 못한 채 욕(辱)을 해대는 ‘비(非)문화적·비이성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경거망동….

어느 것 하나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위선과 허위, 가식의 행동만으로 판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것도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안좋은 냄새가 더욱 진동한다. 사회지도층은 무슨, 사회비행(非行)층이 더 맞지 싶다. 그들에게 자신의 잘못에 목숨을 걸라고 주문하는 것은 애당초 씨도 안먹힐 소리. 어떻게든 호의호식으로 일관하려 하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따라서 정작 욕을 내뱉어야 하는 것은 문화부 장관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다. 사실 국민은 이미 욕을 바가지로 해대고 있다. 이 정부를 향해, 정치권을 향해, 비리와 근무태만 공직자들을 향해….

그래도 분이 안풀리지만 우리 ‘착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욕을 하다 지친 심신을 달래려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놀이라도 가보려 해도 팍팍한 살림살이에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피겨 퀸’ 김연아가 그나마 마음 한구석에 주는 위안에 만족할 줄 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국민은 스스로 위안을 찾는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어느 정부든 국민에게 위안을 준 적이 거의, 사실상 없기 때문에 몸에 밴 습관인 것 같다.

정부는 작금의 위기상황은 ‘불신’이 문제라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과잉반응과 공포심을 거두라고 입만 열면 외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불신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윗선의 위선과 허위, 가식이 그 원인인데도 말이다. 누구도 정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집안 단속이나 정치적 조율도 제대로 못하는 정부를 그대로 믿었다가는 오히려 낭패당하기 십상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국민을 청개구리처럼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남(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은 남(적)에게 있을 것이고, 남(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34쪽) 위기가 기회 또는 더 큰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로 정부의 하기 나름이다. 남탓하지 말고 내부부터 다스리는 것이 국민 신뢰를 회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첩경이라는 것을 이 정부는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가식은 진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최진실이 몸으로 보여준 사실을 진정 고마워하며….

[[최범 / 논설위원]]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