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페미니즘이 뭐길래]10회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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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12.16. 오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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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에 참여한 필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이 뭐길래’ 함께 읽어보시죠. 연재글 의견은 h2@khan.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


여자라서 행복해요?

2000년 한 냉장고 광고에서 심은하가 고혹적인 자태로 말한다. ‘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 당신의 궁전에는 고급형 양문 냉장고가 어울린다고 속삭이듯이 조수미의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어요)’가 배경음악으로 우아하게 흘러나온다. 이 광고는 1980년대 말 최진실의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만큼이나 신드롬을 일으켰다. 여성의 행복은 가정에 있다는 메시지도, 이를 상품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광고 전략도 낡은 것이었다. 도발적인 것은 ‘여자라서’ 뒤로 따라 나온 ‘행복해요’의 의외성이였다. ‘여자라서 안 된대요, 여자라서 힘들어요, 여자라서 불행해요’는 상투적이다. 이 상투성을 위반해서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간단한 카피 한 문장이 강한 임팩트를 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15년간 한국 사회는 남녀 할 것 없이 행복 경쟁과 성공 투쟁을 벌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과 성공에 관한 논리와 방법을 제안하는 자기계발 담론이 크게 확산된 것은 이를 방증한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7가지 혹은 8가지 습관이 있다는 둥, 최고의 습관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는 둥, 저녁형 인간 중에도 성공한 사람이 있기는 하다는 둥, 돈 앞에서 체면 차리면 가난한 아빠처럼 된다는 둥, 이제 부자 아빠처럼 새로운 ‘치즈’를 찾아 모험적으로 옮겨다니라는 둥의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들이 똑같은 얘기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도 모두에게 분명해졌다. 행복은 경쟁 없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성공과 도태 사이에 점이지대는 없기 때문에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 투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행복과 성공은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책임지는 각자도생으로 이뤄내야 한다.

‘각자도생’하라는 이 시대의 주문이 섬뜩한 것은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다. 불가능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건 성인이건 생애과정에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는 개인은 없다. 시장을 이용하라고 하지만 상품 구매만으로 충분히 해결가능하다고 말한다면 물정을 모르거나 악의적인 눈감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수행되어야 하고, 수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그래야 한다고 믿게 하기 때문에 각자도생의 판타지는 재앙인 것이다.

이 재앙을 보다 복잡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여성이다. 지난 15년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도, 일을 해야 하는 여성도 늘어났다. 일터라는 경기장은 모름지기 공정한 게임을 위해 누구에게나 동등한 경쟁의 룰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녀 플레이어들이 서 있는 그라운드가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은 과장되어 있으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가 알아서 감수할 일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낙오되거나 반칙패로 퇴장 당하기 쉽다.

가정에서 누군가를 더 돌보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여성이지만, 여자라서가 아니라고 한다. 남자들이 경기장에 나가 있는 경우가 더 많아 생긴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일 뿐이다. 똑같이 경기장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하면서 집안일까지 책임져야하는 어려움에 대한 여성들의 토로는, 여자라서가 아니라 더 잘하고 효율이 좋기 때문이라는 신고전학파의 분간 없는 경제 교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터에서보다 더 어렵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야근에 시달리는 남편 탓만도 아니지 않는가. 그저 이런 선택과 결정을 내린 자신의 탓을 하는 게 편하다. 그리고 그 책임을 자기 단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요컨대 행복과 성공의 성패가 여자라는 존재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일상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그와 동시에 여자로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선언된 그 시점에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광고 카피가 나타난 것이다. 여자라서 차별받고, 여자라서 불행하다고 호소할 수도 없는 시대에 여자라서 행복하다니! 여성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골몰하던 여성들의 욕망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저주에서 풀려난 신데렐라

고학력 여성들이 대규모로 증가하고 이들의 자아실현 욕구가 가시적으로 분출되던 1990년대 광고 카피들은 커리어우먼, 프로 여성, 신세대 여성, 신세대 주부 등의 신조어들을 쏟아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남성과 똑같이 당당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아를 실현하길 원하는 여성 대중의 욕망을 읽어낸 것이다. 여자도 남자처럼 동등하게 성공하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며, 소비를 통해 그에 적합한 ‘신분’을 갖추라고 유혹했다.

광고는 욕망의 변화를 재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하며, 또한 욕망을 정교하게 조작하기도 한다.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카피에 숨겨진 교묘한 노림수는 수식 구문의 과감한 생략이다. 이 문장 앞에 ‘대리석 궁전 아파트에서 남편한테 사랑받고 사는’이라는 구문을 넣으면 단박에 그 의외성과 부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이 광고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정말로 전업주부가 된 심은하를 통해 광고 속 판타지의 강도는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이 생략 구문이 반드시 상류층 전업주부에 대한 구체적 열망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행복과 성공 전략의 상징이었을 따름이다.

2000년대 이후 인기를 끈 여성 자기계발서들이 추천한 전략은 기꺼이 ‘속물’이 되라는 것이었다. 2000년대 중반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남인숙)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논리와 방법을 제시한다. 남인숙에 따르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20대에든 30대에든 ‘누구나 속물이 된다.’ 그러니 20대부터 속물이 된다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특히 여자 20대는 인생의 모든 것, 즉 취업과 결혼에 관한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므로, 오히려 이때부터 속물성에 철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릇 속물이란 무엇인가. 두꺼운 낯으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 욕망의 두 축은 돈과 사랑이다. 남인숙은 돈은 사랑을 대신할 수 없고, 사랑도 돈을 대신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경제력은 필수이며, 사랑과 결혼 역시 운명이 아니라 성공 전략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막연한 꿈이나 순수한 사랑을 좇는 대책 없는 ‘낭만 소녀’로 살다가 30대에 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여성 자기계발서들이 독립적인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강조하면서 신데렐라를 저주하고 파문한 반면, 남인숙이 신데렐라를 전략가로 귀환시킨 것도 이 맥락에서다. 백마 탄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거저 오지 않았다. 능력남임을 알아보는 선구안과 유리 구두를 떨어트리는 결정적 유인책을 통해 신데렐라 스스로가 쟁취해낸 것이라는 거다. 같은 시기 히트를 쳤던 안은영의 가 80가지로 명제화 하고 있는 핵심 지침도 상통한다. ‘30대에 재산세를 내는 즐거운 상상을 하라’, 그리고 ‘절대 남자 보는 눈을 낮추지 말라.’(▶바로가기 여자생활백서 80가지 전체목록)

속물이 되라는 지침을 여성들이 실생활에 얼마나 곡진하게 적용하며, 그래서 성공적이었는가는 알 수 없다. 재태크 서적을 읽고 부자가 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환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종 재태크 전문가들이 준엄하게 말하듯, 실제 부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부자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속물론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능력남을 만나 상류층 전업 주부가 될 확률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아니다. 핵심은 백마 탄 왕자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속물 마인드인 것이다.

안은영이 제안하는 리스트를 더 살펴보자. ‘미모 지상주의를 욕하지 마라’, ‘촌스러운 걸 순수하다고 착각하지 말라’, ‘사랑받고 싶다면 머리를 굴려라’. 여자는 모름지기 예뻐야 하며, 그러니 외모를 가꾸어야 하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려면 갖은 수단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들에게 부여되어 온 세속적 가치와 과제들이었다. 다만 그동안은 대놓고는 하지 말라는 위선적 규범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런 위선적 감시 때문에 써야 했던 가면을 벗고 수치심 없이 하라. 여자라서 행복해질지니.




속물의 불안

흥미로운 것은 속물론이 유독 여성들에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 스노비즘 세태에 대한 탄식과 주 저격 대상이 여성들을 향했다는 것이다. 부의 축적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면서 돈과 출세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과 그 실천을 두둔한 것은 전사회적 현상이다. 남성들은 명품 골프채로, 여성들은 명품 백으로 자신의 사회적 위상과 존재감을 자랑하는데 서슴없어졌다. 그럼에도, 된장녀 담론이 보여주었듯이 샤넬백과 스타벅스를 소비하는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만 극단적인 반감이 표출되면서 스노비즘을 주도하는 주체가 여성들인 것으로 지목되었다. 결혼과 출산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속물, 일자리도 빼앗으면서 배우자감도 경제력으로 저울질하는 속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댓글을 통해 당시 된장녀 논란을 보여주는 경향신문 기사 [커버스토리]왜! 스타벅스인가)

사실 어느 시대에서든 여성들은 더 속물로 주목받는다. 세속에서의 인정 욕망을 본질로 하는 속물성 충동의 매커니즘 때문이며, 인정 욕망은 후발 주자 혹은 사회적 배당이 적은 이들에게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김홍중(2008), “스노비즘과 윤리”, 「사회비평」 39호) 소비자본주의에서 소비층으로 청년세대와 더불어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 것도, ‘신세대’니 ‘프로여성’이니 하는 정체성 담론의 생산을 광고가 주도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커피, 가방, 향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취향, 가치, 개성을 구매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율성과 주체적 삶을 경험해보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및 자기계발 문화상품의 광범위한 소비층으로 여성들이 소구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털사이트에 ‘된장녀’로 검색하면 나오는 ‘정형화’된 된장녀의 이미지.



여성들이 상품 소비와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이유와 의제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인 것이다. 이것이 남성과의 차이다. 남성은 경쟁력 있는 개인이 되기 위해 자신이 남성임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의 규칙으로 만들어져 온 세계에 후발 주자로 입성한 여성들은 남성처럼 되기도 해야 하며, 그렇다고 여성임을 완전히 기각해서도 안 된다. 생리 휴가나 출산 휴가 사용을 꺼려가며 남성과 똑같이 일하되, 회식 자리에서는 적당하게 빠져주면서 아내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여성으로 보여야 한다. 일터에서 성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경쟁질서의 위반이라며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성역할 기대에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속물 마인드로 무장하라고 권유받는 까닭이지만 그런다 할지라도 여전히 불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과 사랑을 두고 내 욕망에 충실하도록 야무지게 전략을 짜도 성공을 낙관하기 어렵다. 끊임없는 자기 투자에도 불구하고 외모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자산 가치화 하는데 성공하는 여성은 드물다. 임신과 양육 프로젝트는 리스크 예측과 관리가 어려우며, 일과 가족의 분산 투자는 여전히 성과가 비관적이다.(엄혜진(2013), “꿈권하는 사회, 불안한 자기 열중”, 레디앙) 그 어떤 선택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달리 말해 속물 마인드를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해지는 것이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지구에서 만났을 때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의 실현은 상품 소비의 쾌락과 등치된다. 마치 자위용 포르노처럼 즉자적인 충족에 익숙해지는 습속을 만든다. 욕망을 증식시키는 데에만 완고한 자기계발 상품 소비를 남녀 막론 없이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남성과 여성이 일터와 생활세계에서 더 많이 더 밀도 있게 마주치게 되었으나, 자기계발에 전념하여 각자도생하라는 논리는 남성과 여성이 놓인 구조적 차이와 현실적 문제를 서로가 사려 깊게 이해하고, 공존의 윤리를 쌓아가도록 자극하기 보다는 남녀 간, 개인 간 갈등으로 치환하는 데 기여한다.




남녀 누구나 속물이 되라고 독려 받던 바로 그 시기에 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출생지가 다른 남녀가 만나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를 쓰고 있으니 싸울 수밖에 없다는 간단한 전제로, 의사소통 기법만 익히면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대화기법에 관한 자기계발서의 정전으로 읽히는 이 책과 그 무수한 변형판본들은 남성들은 야망의 화신이며(공적 성취), 여성들은 관계에 목매단다(사적 성취)는 성차에 대한 오랜 정형화된 논리들을 재생산하고 있다. 남녀 모두 이 지침으로 실생활에서 큰 재미를 봤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남자어’와 ‘여자어’를 익힌다고 해서 직장 동료로 혹은 연인과 배우자로 만나 맺게 되는 구체적 관계와 그 구체적 경험 차이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성에서 왔든, 금성에서 왔든, 우리는 지금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불안은 화성 이민자와 금성 이민자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지구라는 사회, 경제적 생태계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생존하고, 나아가 함께 행복해지려면 지구가 그 어떤 이민자들의 다양한 삶도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남자만 산다는 화성으로, 여자만 산다는 금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말이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방’ | 경향신문 자료사진




■향이네 기획 ‘페미니즘이 뭐길래’ 목차
1회 메갈리아의 ‘거울’이 진짜로 비추는 것(윤보라 여성학 연구자)
2회 “여자도 군대 가라”?: 여군 예능으로 들여다본 군복무와 ‘성평등’의 복잡한 관계(조서연 인문학 연구자)
3회 데이트 성/폭력에 대한 소고: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김보화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4회 남성진보논객과 담론헤게모니: ‘청년진보논객’ 데이트폭력 폭로에 부쳐(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5회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6회 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7회 “나는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입니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8회 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사회에서는 안될 일인가?(박이은실 여성학자)
9회 그들의 외침: 일 하겠다. 그러니 돈, 욕, 매 앞에서 평등을 허하라!(홍태희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
10회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11회 ‘진짜 페미니즘’을 찾아서- 타령을 도태시키고 다시 논쟁을 시작할 때(손희정 영상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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