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기사'를 만드는 생태계, ㄱ부터 ㅎ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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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부터 네이버와 카카오의 뉴스 제휴 심사를 담당하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네이버-카카오 뉴스 제휴 및 제재 심사 규정’이 시행된다. 핵심은 ‘나쁜 기사’, 이른바 어뷰징 기사를 걸러내는 것이다.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10가지의 부정행위 유형을 세세하게 짚어가며 언론사가 부정행위를 위반할 경우 퇴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바 있다.

어뷰징 기사 등 왜곡된 언론의 상황은 인터넷신문의 급증과 관련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쟁 심화로 뉴스 품질 저하와 어뷰징과 같은 왜곡된 저널리즘 행태가 만연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인터넷신문의 내용분석을 통해 이를 실증적으로 살펴보는 '인터넷신문의 뉴스 생산 및 유통구조 연구'(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외 3명)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를 참고해 ㄱ부터 ㅎ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어뷰징 기사의 특징에 대해 정리했다. 미디어 수익모델과 떼놓을 수 없는 온라인광고도 곁들여 정리했다.
연구에서는 2015년 4월 유선인터넷 도달율을 기준으로 총 12개의 신문사를 선정했다. 신문사는 신문 유형과 포털 뉴스서비스의 제휴 특성에 따라 분류됐다. 어뷰징 관련 분석은 2015년 5월20일부터 26일까지 제공된 전체 292개의 메르스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ㄱ : 광고 수익

광고 수익은 인터넷 언론사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다. 유일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인터넷신문의 낮은 진입장벽, 포털 의존적 언론 생태계, 한정된 광고 시장이 어뷰징 기사의 무분별한 양산을 낳았다.

연구진이 개별 기사가 노출되는 웹페이지의 광고 유형을 살펴본 결과, 한 기사당 평균 16개의 광고가 관찰됐다. 가장 많은 광고를 제공한 인터넷신문은 <더팩트>였다. 특정 페이지에서 32건의 광고가 확인됐다. 광고 유형은 배너광고가 가장 많았으며, 트랜지셔널 광고와 플로팅 광고 등 움직이거나 기사의 본문을 가리는 광고도 많았다. 많은 광고는 기사의 본문을 가려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참고 : 다만 <더팩트>는 지난해 말부터 ‘클린사이트 연중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집안의 3대가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클린사이트’를 목표로 선정적 콘텐츠 및 광고를 퇴출하고 있다.

ㄴ : 노출, 네이버, 네티즌 반응

어뷰징용 기사의 선택은 네이버나 다음이 제공하는 ‘인기검색어’ 혹은 ‘실시간급상승검색어’ 등이 기준이다. 뉴스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기 위함이다. 검색어를 포함한 기사를 거의 같은 내용으로 사소한 수준의 단어나 문장 구조만 바꿔서 전송·게재해 트래픽을 유발한다.

보고서는 "이제 인터넷신문의 전문성은 「인터넷신문법」에 따른 인터넷신문 등록 여부라기보다, 네이버와 어떤 제휴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라며 현 상황을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ㄷ : 단신

기사 형태를 살펴보면, 전체 1306건 중 26%를 차지하는 304건에서 어뷰징이 확인됐다. 그 가운데 5줄 안팎의 단신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147건(43.2%)으로 가장 많았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95건(27.9%)으로 뒤를 이었다. 또한 네티즌의 반응을 포함한 경우는 89건(26.2%), 기사 제목으로 이슈를 보도하는 경우는 9건(2.6%) 발견됐다.

ㄹ : 리스트

기사 제목과 본문 사이에 있는 광고들은 대체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정 문구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고는 기사 목록과 같이 리스트화돼 독자들로 하여금 광고를 기사로 착각하게 만들어 클릭을 유도했다.

ㅁ : 매뉴얼

기사 수준이 쓰레기와 유사하다는 비난에서 탄생한 ‘기레기’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명사가 됐다. 이들이 작성하는 ‘쓰레기’는 아무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매뉴얼에 따라서 만들어진다. 보고서는 <조선닷컴>의 어뷰징 대응 원칙과 유의사항을 정리한 매뉴얼을 공개했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클릭을 유발하는 제목 + 눈길 끄는 사진 + 간단명료한 내용’의 기사를 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꿔 자주 많이 낸다.

  • 기사작성 + 출고까지 1개당 10분을 넘지 않아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어를 크로스 체크해서 제목과 네티즌 반응에 비슷한 주제의 검색어를 같이 넣는다. 예) 김희애 눈물(네이버) + 김희애 폭풍오열(다음) = 김희애 폭풍오열 눈물

  • 경쟁지인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MBN>, <매일경제>의 검색기사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 이들 기사가 상단에 올라와 있으면, 가장 먼저 그 키워드로 기사를 써서 우리가 우위를 점해야 한다.

  • 타사 기사를 참고할 경우, 기사를 반드시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쓸 것. 일부 단어와 문구, 문장 순서 등을 손봐 저작권 시비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flickr, Fabricio Zuardi, CC BY-SA


ㅂ : 배너광고

배너광고의 경우 여성의 신체를 노출하거나 선정적인 자세를 통해 성행위를 연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업이나 사행성 게임을 유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광고는 인터넷신문 기사 자체의 품질을 해친다.

ㅅ : 선정성

인터넷 기사 제목이 선정성을 띄는 경우는 전체의 25%였다. 의성어, 의태어, 느낌표 등으로 뉴스 이용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제목이 9.1%로 가장 많았고, 감정이나 욕망을 자극하는 경우가 6.2%, 성적 관심을 끄는 단어나 표현을 포함한 제목이 3.6%, 직설화법이나 비유법을 사용하여 특정인과 특정 단체를 칭송, 비하하는 제목이 2.4%였다. 강렬한 수식어를 사용한 제목은 2.2%, 취재원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 감정적인 표현을 표현한 제목은 1.5%였다.

네이버 뉴스스탠드 제휴사의 기사 제목이 선정적인 경우가 검색제휴나 비제휴보다 높게 나왔다. 뉴스스탠드 제휴사 인터넷 기사의 제목 선정성은 203건(62.1%)으로 뉴스검색 제휴사 88건, 비제휴사 36건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ㅇ : 이름

연구진이 메르스 관련 어뷰징 수준을 분석한 결과 기자 이름이 명시돼 있지 않고 팀 혹은 부서명으로 기입된 경우가 171건(58.6%)이었다. 실제 기자의 이름이 명시된 경우에는 기자 이름 옆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기능을 함께 제공하고 있는데, 이때 해당 기자가 각종 어뷰징 유형을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1263건의 기사 중 팀이나 부서명으로 기사 작성자의 이름(바이라인)이 명시된 경우는 14.2%로 나타났다. 팀이나 부서명으로 작성자의 이름이 공개된 경우, 하루 평균 18.6개의 기사가 작성되고 있었다. 반면 기자 이름이 명시된 경우는 한 기자당 평균 2.93개의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편집부’ 따위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경우 훨씬 많은 기사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이름 걸고 쓰기 부끄러운 기사엔 이름을 표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사의 품질 저해를 막을 수 있다.

ㅈ : 진입장벽, 종이신문, 제휴

인터넷신문 시장에는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 물론 신문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5인 미만 언론사가 퇴출당하기 시작하면 말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그렇다. 낮은 인터넷신문의 진입장벽 때문에 다수의 사업자가 난립한다.

거의 90%가 넘는 사업자의 수익모델은 광고다. 이들이 한정된 인터넷광고 시장을 나눠먹어야 한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포털과 제휴사업자가 돼야 하고, 포털에서도 높은 노출도를 기록해야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언론은 노출도를 높일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한다.

인터넷신문의 범람이 어뷰징 기사의 원인 중 하나이긴 하지만, 전체 기사의 어뷰징 수준은 종이신문 기반의 언론에서 더욱 빈번하게 나타났다. 제목만 변경해 동일한 본문을 반복 작성하거나 기사 내 인기기사의 제목을 삽입하는 어뷰징 유형이 인터넷신문에 비해 높았다.

ㅊ : 천박함

ㅊ에 해당하는 마땅한 키워드를 찾지 못했다. ‘출처’를 떠올렸으나, 어뷰징 기사에서는 ‘출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참혹한 어뷰징의 사례를 다룬 기사를 소개한다. 현재 해당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죽음 앞에서도 천박함을 잃지 않았던 기사다. 기사의 대상이 된 <뉴데일리> 외에도 몇몇 언론사가 비슷한 어뷰징에 동참했다.

ㅋ : 키워드

기사 어뷰징 유형 중 가장 많은 것은 키워드를 활용한 어뷰징이다. 기사 본문에 다수의 키워드를 포함해 해당 신문사의 기사 검색 확률을 높이려는 의도다. 기사 내에 삽입된 보도사진의 캡션이나 본문 상단 혹은 하단에 뉴스 키워드를 제시해서 정확도를 높이고자 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확도’란 검색 상단에 걸릴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기사가 사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했는지와는 무관하다.

ㅌ : 퇴출

어뷰징 기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네이버-카카오 뉴스 제휴및 제재 심사 규정’을 통해 언론사 퇴출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월 발표한 규정안에 따르면 실시간 검색어를 따라가는 기사, 선정적인 기사로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 기사를 가장한 광고, 기사의 대가로 업체로부터 금전적인 이익을 받는 경우가 해당한다.

규정안은 ‘벌점’ 제도를 사용한다. 부정행위를 하면 벌점이 부과된다. 어뷰징 기사를 작성한 경우 1일(24시간) 기준 한 매체의 어뷰징 기사 비율이 1%만 넘어가도 바로 벌점 1점이 부과된다. 1개월 이내 누적 벌점 10점 이상이면 바로 경고 처분을 받는 식이다. 그다음에도 10점을 넘으면 포털 내 모든 서비스가 24시간 노출 중단되고, 그 이후에는 48시간 노출 중단된다. 여기서 한 번 더 10점을 넘기면 계약이 해지된다.

ㅍ : 포털 의존적 구조

좀 더 근본적인 해결안은 언론사가 포털 의존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포털은 뉴스유통의 주된 경로다. 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인터넷 뉴스 이용자 조사’(2014)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뉴스를 가장 많이 접하는 경로로 ‘포털 뉴스 섹션’과 ‘포털 검색’이 꼽혔다. 그 비중은 70% 이상이다. KT경영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 역시 포털 뉴스 서비스를 통한 인터넷신문 이용 비중이 약 87.2%로 나타났다. 어뷰징 기사는 사용자가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이로 인해 야기되는 뉴스 연성화의 한 단면이다.

ㅎ : 혁신

포털 의존적인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신문의 혁신 의지와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의 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자사 사이트,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한 뉴스 채널 다양화 전략

  • 자발적인 어뷰징 기사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및 기자의 자발적인 노력

  • 자정 능력을 갖춘 인터넷신문사를 대상으로 한 정책적 지원 방안

  • 인터넷신문의 뉴스 생산과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진흥법과 정책 필요성




채반석 기자(chaibs@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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