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작성자 다수가 남성… 반메갈리아 전선 아래
남성들 하나로 뭉쳤으니 누가 감히 맞서겠나
여성이 남성 입맛 안 맞는 발언 하면 수십 수백배 보복
OECD 국가 중 뒤끝 최고인 한국남성들
“‘시사인’ 정기구독 해지했습니다.”
어느 분이 클리앙이라는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지난 5년간 시사인을 구독했지만, 이번 호에 실린,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칼럼에 격분해 해지를 했다는 내용이다. 곧 이에 호응하는 댓글이 달렸다. “나도 이번에 해지 신청했다.” “이참에 본때를 보여줘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비단 이분들 말고도 시사인을 끊겠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시사인이 담당하는 수많은 긍정적인 역할을 생각한다면 한 기자가 쓴 칼럼 한편으로 절독을 해버리는 그 속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메갈 옹호 말라는 남성들 경고
이에 항의하는 방법이 여럿 있을 텐데도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걸 보면 시사인이 그간 싸워온 ‘반칙을 일삼는 기득권 세력’보다 메갈리아를 훨씬 더 극악무도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시사인은 시사저널에서 독립한 잡지다. 삼성과 관련된 기사가 수뇌부의 판단으로 실리지 않자 이에 흥분한 기자들이 따로 잡지사를 차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꼼수’로 유명한 주진우 기자가 바로 시사인 소속이다. 잡지사 중 사정이 좋은 곳이 그리 많지 않지만, 삼성 등 대기업 광고를 기대하기 힘든 시사인의 사정은 더 열악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시사인 절독운동은 해당 언론사의 가장 아픈 부분을 제대로 타격한다. 이는 메갈리아를 옹호하지 말라는 남성들의 경고다.
사람이 다 그렇듯 한국남자들도 학벌과 지역, 경제적 계층, 이념, 취미 등이 다르며, 그에 따른 갈등이 상시적으로 존재한다. 내가 즐겨가는 야구사이트에서도 댓글을 통한 싸움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같이 뭔가를 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그랬던 이들이 반메갈리아의 구호 아래 하나로 뭉치는 걸 보면 ‘기적’이라는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학벌과 지역, 경제적 계층, 이념, 취미의 차이를 초월한 단합, 이들 앞에 맞서려면 웬만큼 용기가 있지 않고서는 힘들다. 이들에게 많은 건 숫자뿐만이 아니다.
댓글의 성별을 공개한 네이버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남성분들은 남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인터넷에 달리는 댓글의 상당수를 책임진다. ‘회차로 없는 고속도로’라는 기사 댓글 중 90%, 아버지 때려 숨지게 한 10대에 관한 기사에는 81%, 최후의 포식자 담비 기사에는 86% 등등 기사 내용이 어떤 것이든 댓글 작성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반메갈리아 전선 아래 하나로 뭉쳤으니 누가 감히 이들과 맞서겠는가? 게임회사 넥슨이 결국 김자연 성우를 쓰지 않기로 한 것, 정의당이 메갈리아에 우호적인 논평을 철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실로 대단한 한국남성들이다.
혼탁한 세상 여자 탓 하며 여성혐오
한국남성의 위대함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 분노가 사그라들기 마련이지만, 한국남성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남성에게 반기를 드는 언행을 하면, 특히 그 주체가 여성이라면, 5년이고 10년이고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전문용어로 뒤끝이라고 하는데, 이 점에서 한국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다.
2009년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여성이 “180cm 이하 남자는 루저”라고 했다. 그 여성은 철없는 대학생이었고,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키작은 남자가 정말 루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하나로 뭉쳤고 수십, 수백배의 보복을 시작한다. 방송사가 사과를 하고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을 교체하는 등 나름의 성의를 보였지만, 남성들의 분노는 그칠 줄을 몰랐다. 심지어 그 발언으로 정신적 피해를 봤다면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해당 여성이 모 기업 인턴사원으로 갔을 때 며칠만에 잘리게끔 한 거야 사건 직후니 이해할 수 있다손 쳐도, 몇 년이 지난 뒤까지도 수시로 ‘루저녀 근황’이란 글을 올리며 그녀에 대한 소식을 주고받고 있는 걸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녀가 남친과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을 때, 한 남성은 사진속 남자의 키를 177cm로 추정한 뒤 ‘왜 너는 루저랑 사귀느냐?’고 일침을 가했는데, 이 끈기를 좋은 일에 썼다면 우리나라가 진작 국내총생산(GDP)가 5만달러를 넘어서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여성은 한둘이 아니다. 특히 남성들이 신성시하는 군대에 대해 말실수를 하면 더 큰 화를 당하는데, 유인경은 “눈 내리는 게 재밌다는 군인도 있다”는 발언으로 몇 년간 욕을 먹어야 했고, 김신명숙은 군 문제를 다룬 토론회에서 웃었다는 이유로 20년이 다 되도록 까이고 있다. 이들의 사례 역시 남성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교수님 책을 두 권 샀는데 전자책이라 환불이 안 됩니다. 종이책이면 찢고 불태우고 퍼포먼스에라도 쓰겠는데...”
여성신문에 쓴 글을 읽고 어느 분이 단 댓글이다. 이분 말고도 내 책을 다시는 사지 않겠다는 분들이 꽤 되는데, 내가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댓글이 공포로 다가왔으리라. 먹고 살 수 있는 다른 일자리를 가진 게 다행이다 싶은데, 나한테 수업을 들었다는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은 진심어린 충고를 한다.
“무지한 대중 속 나 혼자 깨어 있다는 생각은 제가 대학 1학년 때나 갖던 생각입니다. 부디 철 좀 드시길.”
세상이 혼탁한 것을 여자 탓으로 돌리고 열심히 여혐을 하는 한국 남성들이 철이 든 거라면, 그냥 철이 들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철이 덜 든 남성들이 더 많이 나오길 빌어본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