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싱은 시진핑이 두렵지 않나? 배신자로 불리는 슈퍼맨[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9일 10시 00분


미국과 중국, 두 고래 싸움에 홍콩 고래 등이 터지려나요? 파나마 운하의 항구 운영권을 미국에 넘기기로 한 홍콩의 전설적 기업인 리카싱(李嘉誠) 전 CK허치슨 회장 얘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계약으로 허를 찔린 중국 측이 리카싱을 두고 ‘배신자’라며 분노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리카싱은 자산을 사고파는 데 있어 완벽한 타이밍을 구사하며 세계적인 거부가 된 인물이죠. 그런 그가 민첩하게 움직였다는 건 지금이 바로 발을 빼야 할 타이밍이란 뜻일 텐데요. 97세 홍콩 부호 리카싱, 그가 펼쳐온 사업의 기술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018년 3월 실적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리카싱 CK허치슨 당시 회장. 그는 90세였던 2018년 5월 회장직을 아들에게 넘겨줬지만, 여전히 수석고문으로서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이번 항만사업 매각 계약 역시 그가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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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아첨한 배신자라고?
“국가 이익을 무시하고 모든 중국인을 배신하고 팔아먹는 행위”.
지난 13일 친중국 홍콩 매체 타쿵파오가 CK허치슨의 해외 항만 사업 매각을 두고 내놓은 논평입니다. 홍콩기업 CK허치슨이 파나마를 포함한 23개국 항구 지분을 미국 블랙록 컨소시엄에 팔기로 3월 4일 체결한 계약을 맹비난한 건데요.

중국 공산당에서 홍콩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홍콩·마카오공작판공실)은 이 기사를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했습니다. 비공식적이지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거죠. 이번 거래에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분노했고, 중국 당국이 이 거래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도 이어집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인민이 적’이라며 CK허치슨 창업자 리카싱 전 회장(2018년 은퇴, 현재는 수석고문)을 향해 분노를 쏟아붓고 있고요.

화물선이 3월 13일 CK허치슨이 관리하는 파나마 운하의 발보아 항구를 지나고 있다. AP 뉴시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파나마 운하는 미·중 갈등의 상징으로 떠올랐고요. 그중에서도 CK허치슨이 파나마에서 운영 중인 2개의 항구가 핵심이었거든요(딥다이브 파나마 운하 편 참고). 아마도 시진핑 주석은 이 항구 운영권을 미국과의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려고 했을 텐데요. 리카싱 전 회장은 중국 정부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를 미국 투자자에 쏙 넘겨버렸습니다. 이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운하를 탈환했다”며 환호했고요. 중국 당국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물론 CK허치슨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이 아닌 상업적 거래라고 주장합니다. 기존 평가 가치의 두배 넘는 228억 달러(약 33조4400억원)에 팔게 됐으니, 성공적인 거래이기도 하죠.

리카싱이 계약체결 전에 중국 정부에 물어보지 않은 이유는 뻔합니다. 물어봤으면 당연히 안 된다고 했을 테니까요. 만약 사전 승인을 구한다면, 그것도 사실 좀 이상했을 겁니다. ‘중국 공산당이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을 좌지우지한다’는 미국 측 주장을 인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이 계약의 완료일은 4월 2일. 중국 네티즌들은 ‘리카싱은 국익을 위해 거래를 포기하라’고 열을 올리는데요. 아마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랬다간 트럼프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결말은 두고 봐야겠지만,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중의 힘겨루기를 단박에 정리해 버리고 막대한 이익을 챙길 기회를 잡은 리카싱 전 회장. 그는 이전부터 절묘한 타이밍에 자산을 사고팔았습니다.

공장 견습공에서 세계적 거부로
결핵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했던 가난한 12살 소년.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건너간 리카싱은 생계를 위해 공장 견습생이 됩니다. 22살이던 1950년, 전 재산을 털어 플라스틱 꽃을 만드는 기업 ‘청쿵(광둥어로 양쯔강)’을 세웠죠. 사업은 성공적이었고요. 그렇게 공장을 확장해 나가던 리카싱은 깨닫게 됩니다. 홍콩에선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보단 땅을 사는 게 더 돈이 된다는 걸요.

기회는 곧 찾아옵니다. 좌파 세력이 중국 본토 문화대혁명에 자극받은 홍콩 내 좌파세력이 폭동을 일으킨 건데요. 중국이 홍콩을 침략할 거라며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홍콩에서 달아났고요. 이로 인해 홍콩 부동산 가격이 50%나 폭락합니다. 이걸 싹 사들인 게 바로 리카싱의 청쿵이었죠. 홍콩은 다시 평온을 찾았고 부동산 가치는 2년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합니다.

그는 그 땅에 고층 아파트를 짓습니다. 문화대혁명을 피해 홍콩으로 흘러온 중국 본토인들이 살 집이 필요하다고 본 거죠. 특히 아파트를 선분양해서 개발비용 부담을 줄이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방식을 택했는데요. 전략은 맞아떨어졌고 1972년 청쿵은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대기업으로 성장합니다.

2018년 5월 은퇴를 알리는 기자회견 후 인사하는 리카싱. AP 뉴시스
사업의 가장 큰 전환점은 1979년, 그가 HSBC은행이 보유한 영국의 유서 깊은 무역회사 허치슨 왐포아 지분을 사들인 겁니다. 그것도 장부가치 절반 수준에 말이죠. 1841년 홍콩이 영국 식민지가 된 이래 처음으로 중국인이 영국 대기업을 소유하게 된 역사적인 거래였습니다. 리카싱의 명성은 홍콩을 뛰어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죠.

당시 HSBC는 왜 허치슨 왐포아를 리카싱에게 팔았을까요. 여기서 리카싱의 정치적 수완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당시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 덩샤오핑은 중국 경제 개방을 모색하던 상황이었습니다. 1996년 앤서니 찬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쓴 전기 ‘리카싱, 홍콩의 억만장자’는 이렇게 전하죠. “은행의 최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리카싱이 중국에서 한 특별한 접촉이었다.”

덩샤오핑과 통한 리카싱
리카싱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가장 먼저 호응한 홍콩 기업인이었습니다. 1980년대 상하이 컨테이너 터미널, 광저우-주하이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맡았고요. 덩샤오핑은 1986년 리카싱을 만나 “조국에 대한 확고한 기여”를 칭찬하기도 했죠. 그 뒤를 이은 장쩌민 전 주석 역시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리카싱 소유 호텔에서 묵으면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정도로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중국 정치권과의 이런 관계 덕분에 그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경제에 올라탈 수 있었고요. 베이징의 거대한 상업지구 오리엔탈플라자를 포함한 주요 대도시 개발프로젝트에 청쿵그룹 로고가 붙습니다.

1986년 덩샤오핑 중국 주석과 만난 리카싱 당시 청쿵그룹 회장. 리카싱 재단
1986년 덩샤오핑 중국 주석과 만난 리카싱 당시 청쿵그룹 회장. 리카싱 재단
1990년대 리카싱은 유럽과 북미 지역의 에너지·통신 자산을 잇달아 인수하며 청쿵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는데요. 여기서도 놀라운 사업적 감각을 발휘합니다. 과거 인터뷰(2018년 중국 매체 차이신)에서 그가 가장 큰 성공이었다고 자평한 래빗(Rabbit) 사례를 소개할게요.

‘이제 이동통신 시대가 온다’고 본 리카싱은 1992년 영국 이동통신회사 래빗을 인수합니다. 하지만 기지국은 너무 적고 통신은 자꾸 끊겼고 사업은 내내 적자투성이였죠. 2년 만에 그는 래빗에서 철수하기로 했고, 마침 인수제안이 들어옵니다. 그가 매수자와 만나 ‘거래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비공개로 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진 지 5분 뒤. 영국에 있는 래빗 대표가 그에게 전화로 알려옵니다. 방금 매수자 측에서 마치 승전국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래빗 대표에 전화해서 “우리가 귀사를 인수할 테니 협조하세요”라고 통보해 왔다고요.

리카싱은 이 거래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죠. ‘우리가 래빗을 계속 보유하면, 손실을 이익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럴 만한 충분한 현금이 있을까?’ 10분 동안 계산한 끝에 그는 래빗을 팔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래빗은 오렌지(Orange)라는 새롭고 성공적인 이동통신사로 재탄생했고요. 닷컴버블이 절정이던 1999년 오렌지 매각으로 청쿵그룹이 거둔 이익은 무려 1180억 홍콩달러(약 22조원)에 달했습니다.

슈퍼맨의 탈중국
투자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으로 그에겐 ‘슈퍼맨’, ‘재신(財神)’이란 별명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는 2007년 중국 주식시장 붕괴와 2009년 초 홍콩 부동산가격 상승 등을 정확히 예측하기도 했죠.

그는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클 뿐 아니라, 가장 존경받는 부자로 꼽혔습니다. 특히 검소함으로 유명하죠. 수십 년 동안 50달러 세이코 시계를 착용했던 그가 10여년 전 바꾼 게 500달러짜리 시티즌 시계이고요. 회장 시절 받은 월급은 5000홍콩달러(약 94만원)로, 경비원보다 적었습니다. 또 1980년 설립한 리카싱 재단에 전 재산의 3분의 1을 쏟아붓고 있죠.

리카싱의 검소함을 보여주는 손목시계. 그는 항상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계바늘을 20분 일찍 맞춰둔다. AP 뉴시스
하지만 이런 명성이 유독 중국에선 흔들리기 시작했는데요.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2013년 이후의 일입니다.

리카싱은 시진핑의 중국에서 발을 빼기 시작합니다. 중국 내 부동산 자산을 잇달아 팔아 치웠고요. 무엇보다 2015년 청쿵홀딩스와 허치슨왐포아를 합병하면서 새 지주회사 CK허치슨 등록지를 홍콩이 아닌 케이맨 제도로 이전합니다.

리카싱의 애국심은 의심받았고 중국 내 여론이 돌아섭니다. 신화통신 산하 싱크탱크는 리카싱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무시하고 도망친다면서 “도덕적 반항 행위”라고 맹비난했죠. 물론 리카싱은 포트폴리오 재조정일 뿐이라고 주장했데요.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당시 중국 인민일보가 그를 겨냥해 쓴 기사는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그들을 붙잡아두는 것보다, 그들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낫다. 시간이 지나면 본토는 사업가 한두 명만 놓쳤을 뿐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잃게 될 것은 중국과 함께 성장한 시대 전체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중국과 홍콩 자산을 계속 줄여갔습니다. 2017년 역대 최고가격(402억 홍콩달러, 약 7조5700억원)에 팔린 홍콩의 73층 마천루 ‘더 센터(The Center)’가 상징적인 사례이죠. 참고로 매각 이후 홍콩 부동산 시장은 고꾸라졌고, 이제 그 건물은 반값에도 안 팔린다고 합니다.

리카싱에 대한 중국 본토 여론이 한층 악화한 계기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리카싱은 당시 일방적으로 시위대를 비판하며 중국 정부 편을 들었던 다른 기업인들과는 달랐습니다. ‘홍콩의 한 시민 리카싱’ 명의로 주요 신문 1면에 의견광고를 냈죠. 내용은 폭력 반대. 그런데 누구의 폭력인지가 모호했습니다. 시위대인지, 아니면 진압 경찰 또는 중국 정부인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리카싱이 신문 1면에 실었던 의견광고.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라’면서 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리카싱이 신문 1면에 실었던 의견광고.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라’면서 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아울러 그는 당국을 향해 젊은 시위자들에게 “관대함”을 보여달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런 애매한 태도가 중국 측의 화를 돋웠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법위원회는 “범죄를 조장한다”고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고요. 친중 세력은 그를 ‘바퀴벌레 왕’이라고 칭하는 밈까지 만들었죠.

CK허치슨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탈 중국’을 해왔고요. 9년 전 26%였던 홍콩·중국 매출 비중은 지난해 11%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제 대부분 사업이 중국 바깥에서 이뤄지죠. 사업적으로만 보면 리카싱이 파나마 항구에 미련을 둘 이유가 크진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압박과 공격을 쉽게 멈추지 않을 겁니다. 다른 기업들에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필요하니까요. 기업인으로 75년을 보낸 리카싱도 이런 지정학적 갈등을 처음 겪어보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그의 베팅은 통할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아시아의 부자, 홍콩 기업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리카싱. 97세라는 노령에도 여전히 뉴스의 중심에 있다는 게 대단한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리카싱 전 CK허치슨 회장을 향한 중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파나마 운하에서 운영 중인 항구를 미국 블랙록 컨소시엄에 팔기로 한 계약 때문이죠. ‘국가 이익을 위해 거래를 중단하라’는 압박이 커집니다.

-플라스틱 꽃 제조업체에서 홍콩의 부동산 재벌로, 다시 무역과 통신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CK허치슨. 그 눈부신 성장을 이끈 건 사고파는 타이밍을 잡는 리카싱의 놀라운 사업 수완이었습니다.

-덩샤오핑 시절엔 개혁개방정책의 지원군 역할도 했는데요. 하지만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엔 빠르게 중국과 홍콩 자산 비중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그의 탈중국 행보에 대한 중국의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이번 파나마 항구 거래가 이슈가 됐죠. 리카싱은 이런 압박을 견디고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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