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협약식에 참석해 있다. 2025.4.16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관련 글을 쓸 때마다 매서운 문자를 주는 선배가 있다. 진보적 매체 출신인데 한 달 전엔 “나라의 미래, 아니 우리 삶의 미래를 위해 이재명은 모처럼 훌륭한 지도자로 생각하는데 그 꼴을 못 보겠다는 입장도 있군요”라고 보내왔다. 매번 “Agree to disagree(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동의)하시지요” 답할 수도 없어 답답했다.
요즘은 붙잡고 묻고 싶다. 대체 이재명을 어떻게 믿고 훌륭한 지도자로 보는지. 이번 주말 민주당 호남과 수도권 대선 최종 경선이 이재명의 대통령 후보 추대식으로 끝날 게 확실해서다. 국민의힘이 정신 차리고 극적 이변이 더해지지 않는 한, 앞으론 이재명 정부 아래 살아야 할 판국이다.
최근 이재명의 변신을 모르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7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해 성공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사법 리스크’에선 벗어났다 해도 ‘신뢰 리스크’는 납덩이처럼 그대로다.
K이니셔티브, 성장전략 등 암만 그럴듯한 공약을 내놔도 믿기 어렵다. 2022년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도 2023년 자기 체포동의안엔 “부결”을 호소한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가결 표 던진 의원 색출을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지난달 고백했다. 국민 신뢰를 이렇게 배반해도 되나 싶다. “민주당은 중도보수”라는 말도 언제 뒤집을지 모른다. “‘존경하는 박근혜’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는 불멸의 어록만 떠오를 뿐이다.
신뢰 리스크를 깨부술 방안은 있다. ‘섀도캐비닛(예비 내각)’을 공개하는 것이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외교·국방장관과 비서실장만이라도 밝히면 좋겠다. 대통령 당선 뒤 그대로 실행한다면 이재명의 신뢰도는 당장 높아질 게 분명하다.
공직선거법 걱정할 것 없다. 지금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당선 다음 날부터 집무해야 하는 특수 상황이다. 2017년 대통령 파면 뒤 조기 대선 때도 섀도캐비닛 공개 요구가 나왔는데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 안 된다고 유권해석 내린 바 있다.
섀도캐비닛을 발표할 경우, 신뢰 리스크만 해소되는 게 아니다. 적잖은 보수층과 중도·무당층이 그가 극단적, 이념 편향적 인사로 나라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까 우려하고 있다.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국민이 믿고 국정을 맡길 인사를 미리 밝힌다면, 이재명 압승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그는 18일 민주당 토론회에서 ‘탕평’을 말했다. 보수 논객들에게 “장관은 보수 진보 안 가리고 일 잘하는 분 모시겠다”고도 했다. 그 정도로는 못 믿는다. 체포영장 기각 뒤 “작은 차이를 넘어 함께 손잡자”고 해놓고도 ‘해당 행위자들’을 찍어냈던 이재명이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시해 소속 정당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표결하도록 헌법과 국회법에 명시돼 있다. 그 당 대표와 개딸들은 헌법 위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 모든 신뢰 리스크에서 벗어나려면, 친명 일색 아닌 섀도캐비닛을 밝히고 검증받는 수밖에 없다. 비서실장은 총리만큼 중요하다. “안 된다”며 이재명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인지, 대체불가 소리를 들을 만큼 각별한 ‘성남 4인방’은 비선으로 빼놓는지도 눈 밝은 국민은 알아볼 터다.
쉽지 않을 것이다. 대선 전 공개해 제외된 인사들과 괜히 척질 것 없다는 계산도 분주할 것이다. 2인자를 두지 않고 진성준의 당 정책위원회, 김민석의 집권플랜본부, 유종일의 성장과통합, 정성호의 인재위원회, 이한주의 민주연구원, 강위원의 더민주혁신회의 등 숱한 옥상옥 조직들을 무한 경쟁시켜 충성을 끌어내는 게 이재명의 용인술이기 때문이다.
중국 주석 시진핑이 그렇게 1인 체제를 굳혔다. 요직엔 자기 파벌인 시자쥔(習家軍)뿐, 다른 파벌은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영도소조와 위원회끼리 충성 경쟁을 시킴으로써 후계자 없는 종신 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다. 과거 존재했던 세력 균형과 권력 견제는 시진핑의 중국에 없다. ‘이재명의 민주당’처럼, 이재명 공약 속 ‘진짜 대한민국’도 이렇게 될까 두렵다.
더구나 이재명에겐 마오쩌둥식의 홍위병도 있다. ‘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고 개딸들을 동원하면 의원직 박탈도 가능하다. 사법부와 검찰은 탄핵으로 압박하면 삼권 장악 완성이다. 경선 룰 바꾸듯 독재로 가는 최종 단계인 ‘룰 바꾸기’까지 마친다면 종신 집권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런 국민적 공포를 가라앉히고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그리하여 이재명 자신이 꿈꾸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섀도캐비닛을 공개하기 바란다. 민주당만 가능한 일이다. 이재명의 결심에 달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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