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면 한국 정치를 떠올리지 않기가 어렵다. 콘클라베는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 제도다. 교황 자리가 공석이 되면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은 새 교황이 뽑힐 때까지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내 시스티나 성당…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이면 탄핵심판 결과가 나와 있을까. 그 결과가 사태의 끝이 아니라 더 어려운 사태의 시작이면 어쩌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의 광신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군가 크리스 마커의 영화 …
《어린 시절 본 영화 ‘혹성탈출’(1968년)의 결말을 잊을 수 없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주인공 일행을 태운 우주선이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다. 주인공 일행은 행성을 탐사하다 곧 말을 타고 총을 쏘는 원숭이 무리에게 붙잡히게 된다. 알고 보니 이 행성은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곳이었…
《기괴하고 매혹적인 영화들을 만들어 온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이레이저 헤드’ ‘블루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 괴작으로 관객들을 당황시켰던 데이비드 린치, 썩어가는 동물 사체 바라보는 일을 즐겼던 변태적인(?) 예술가 데이비드 린치, 그가 얼마 전 타계했다. 국내 언론…
《종교적 가르침을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까. 논리를 통해 설득된 가르침은 논리에 의해 기각될 수 있다. 그것은 논변의 영역이지 믿음의 영역이 아니다. 무엇인가 믿는 것은 그 세계관을 통째로 접수하고 그 안에서 헤엄친다는 뜻이지, 맞는지 안 맞는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지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보도사진이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강렬한 사진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사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진, 여의도에 운집한 시민들의 사진, 그리고 해외의 전쟁 사진 등등. 해외 전쟁 사진은 충격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온다. 끔찍하긴 해도…
《한국인이라면 거의 다 박제상 이야기를 알고 있다. 신라 눌지왕은 자기 동생들이 외국의 볼모로 잡혀 있어 마음이 괴롭다. 이에 신하 박제상은 왕명을 받들어 왕의 아우를 구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 마침내 왕의 아우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본인은 붙잡혀 고문 끝에 죽는다. 달…
《어찌 보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가 조용히 미쳐가는 이야기다. 왜 미치는 것일까? 무엇이 미치게 하는 것일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겪은 폭력적 경험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그런 경험과 기억은 수면 밑에서 그녀의 마음을 착실하게 갉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
《누가 승리자인가? 당신인가? 당신이 무엇이기에? 합격생이기에? 정규직이기에? 미남미녀이기에? 사장님이기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에? 대통령이기에? 황제이기에? 장신구에 새겨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모습을 보라. 이마에 드리워진 월계관이 황제라는 높은 지위에 어울린다. 월계관은 뛰…
《누군가에게서 후광(halo)이 느껴진다? 그는 성인(聖人)인지도 모른다. 종교화에서는 성인 머리 뒤에 환한 빛을 그려 넣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인지, 혹세무민하려는 자칭 성인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후광 효과를 얻기 위해서. 진짜 성인을 마…
《내 작은 소원 하나가 이번 여름에 이루어졌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대성당이 성모승천일을 맞아 유서 깊은 행렬 의식을 재개했기에, 성당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성모상을 지고 시내를 도는 행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나가던 여행객으로서 구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 그 행렬 안으로 …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남긴 이미지 중에는 잘린 머리통을 들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다. 전 세계의 남녀노소가 보는 개막식에 잘린 머리통이라니, 이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퇴폐적이지 않은가. 글쎄, 이 정도가 퇴폐적이라면, 일본 문인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무주공 비화’에서…
《정물화는 극히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사물을 즐겨 묘사한다. 정물을 그리는 이에게 야심이 있다면, 그 사소한 것에 중대한 것을 담거나, 그 비근한 데서 원대한 것을 담거나, 그 일상적인 데서 초월적인 것을 담거나, 그 범용한 데서 아름다움을 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야심이 있다면, 그…
《서양미술사를 소개하는 미술관을 시대 순서에 따라 관람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중세의 종교화가 자취를 감추고, 그다음에는 르네상스 시기의 초상화가 자취를 감추고, 곧이어 인상파의 풍경화도 자취를 감추고 마침내 현대 추상화가 걸려 있는 전시실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는 도대체 뭐가 뭔…
트레이너가 운동선수에게 닭가슴살을 먹으라고 권했을 때, 그 선수 얼굴이 빨개지며 이렇게 대답했다면? “닭가슴살이라뇨. 너무 야해서 못 먹겠어요.” 닭가슴살을 야하게 느끼다니, 이런 사람은 변태성욕자 버금가는 변태가 아닌가. 변태가 따로 있나. 여느 사람과 야릇하게 다른 것을 느끼면 변…